지나간 이야기

빈터의 의미

사람마다 사고의 영역은 약간의 차이가 있겠지만 누군지 빈터를 지녔다면 나름대로 몇 가지의 방향으로 생각을 할 것이다. 저 빈터에는 무엇으로 채울까? 이쁜 집을 한 채 지을까? 꽃을 심을까? 이도 저도 아니라면...

종당에 그 빈터는 어떤 형태로든 소유자의 생각대로 반드시 채워질 것이며 그리되면 빈터로서의 생명은 결국에 소멸하고야 말 것이다. 이것을 과학적으로 해석하자면 모든 물질은 점진적일률화, 이른바 채워짐 현상(Entropy)인 상태함수를 지니게 마련이다.

원래의 의미나 차원은 채워짐이 아니고 소모됨을 의미하지만 소모됨의 뒤편에는 무엇인지 또 다른 것이 차지하므로 채워짐으로 해석이 가능하다. 이를테면 비어있는 용기 속에 물을 채우면, 공기를 포함하여 용기 내부에 존재하는 미시의 모든 물질은 주입된 물의 부피만큼 사라지기 마련인데 이 현상의 역도 역시 성립한다.

의학적 관점에서 모종의 생명체가 죽었다는 사실은 단백질의 분해로 해석하고 있지만,  공학적 관점으로 보면 생명체인 빈터에 엔트로피가 무한대로 증가 되어있는 상태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애초에 빈 것은 없으되 빈 것처럼 보일 뿐이며 우리들 인생은 재충전이 불가한 건전지와 다를 바 없다는 이상한 의미를 지니고있다.

뭔지 채울 수 있는 여지가 있다는 것은 그 사실 하나만으로 행복한 일이다. 그래서 황무지는 황무지로서의 아름다움이 있다. 아이러니하게 황무지의 생명은 개간되기 바로 직전까지 이며 개간이 되고 나면 황무지로서의 아름다움이나 생명은 결국 끝나고 만다.

개간? 그것은 곧 뭔지 채울 수 있는 여지와 희망의 상실이며 또다른 절망의 시작에 불과하다.  욕심은 채우려는 의지이니 욕심이 없다면 채울 것 또한 없는 법, 한껏 욕심을 부리다가 허우적거리며 떠나는 것이 인생이다.  아서라! 이미 채워있는 어떤 상태를 그대는 원하는가?  더 이상 채워야 할 것이 없다면 그것처럼 허전한 것은 없을 것이다.  전혀 그 의미야 다르겠지만 수 천년 전에 제자백가중의 한 현자가 가로되 흘러 넘침은 부족함만 못하다 일렀던 적이 있다. 욕심을 뜻하지는 않지만 그 현자는 이미 '채워짐 현상'의 뜻을 깊이 이해하고 있었음이 분명하다.

지금은 허물어지고 흔적만 남아있는 빈터에 서면,  그곳은 주변의 공허함과 빈터 이전의 풍광으로 기억이 멈춰서기에 공연히 감상적이고 울적한 기분을 참을 수 없다.  그대 어쩌다 지나치던 길목에서 잡초만 무성한 빈 집터를 본적이 있는가? 그리하여 얼마 전 까지 그곳에는 철따라 커튼의 색깔이 변하고 항시 반쯤은 열려있던 두 개의 창문과, 굴뚝 옆에 셋방처럼 달랑달랑 자리하던 비둘기 집,  그리고 가을이 오면 석축에 담쟁이 넝쿨이 유난스레 벌그죽죽 요란을 피우던 이국풍의 널따란 집이 한 채 있었음을 기억하는가?  점차 시간이 지나자 주변의 풍광이 양옥식 2층 또는 3층의 현대식 건물로 둘러 쌓이더니 더러는 알게, 혹 더러는 아무도 모르던 사이 어느 시점에 와서 그 집은 허물어지고 빈 집터로만 남게된 사연을 그대는 아는가? 기쁨과 노여움, 질투와 애욕,  그리고 오분지일의 의미를...

어쩌면 이 빈터는 내 가슴에 비어있는 그 자리와 이리도 흡사할까? 나는 오늘 클로버와 할미꽃에 점령당한 우울한 빈터에 앉아 공연한 한숨을 토해내며 애써 메스꺼움을 인내하고 있다. 어! 비가 오나? 제기랄...
(하필 이럴 때는 꼭 담배곽마저 비어있기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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