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간 이야기

약속을 위하여

약간은 다른 차원의 상식선에서 바라볼 때 지켜졌다면 이미 그것은 '약속'이 아니며, 지킬 수 있으며 반드시 지켜야 하는 것만이 곧 '약속'으로 존재하는것 처럼 보인다. 그러나 비록 지켜지지 않았다 하더라도 '약속'이 아닌 것이 아니듯이 지킬 수 없었던 '약속' 또한 '약속'이다. 이것은 결코 궤변이 아니다. 우리는 벗기 위하여 옷을 입듯(이 부분에서 문제를 제기하지 말라! 그렇지 않다면 입기 위하여 옷을 벗는가?) '약속' 또한 반드시 지켜지기 위하여 존재하는 것만은 아니다. '약속'이란, 지켜질 수도 깨트려질 수도 있기에 반드시 그것은 지켜져야만 한다는 박제된 사고로부터 우리는 구제 되어야한다. '약속'이란 시점의 이전과 이후의 시공간을 연계하는 통로이자 터미널 이기에 의미가 단순하지만은 않으며 문득 튀어 오르는 기억의 탄성으로 하여금 초시공의 긴 터널이기도하다.

만약에 그것이 지켜 졌다면 이미 약속의 가치를 상실할 수밖에 없었던 흥미진진 하고 이쁜 한가지의 약속을 나는 여기에 공개하도록 한다. 그 당시 그러니까 이십대 초반에 저지른 약속이지만 그로부터 이십년을 더하여 사십을 이미 넘긴 지금까지도 지키지 못한 그 약속의 내용은 이러하다.

(잠깐! 나는 지금 마누라에게 밥 숟가락을 차압 당할지도 모르는 위험을 무릅쓰고 이 사실을 공개 하므로, 혹여 눈치빠른 독자가 있어서 스페어용 밥 숟가락을 보내준다면 그지없이 고마울 따름이다. 아하하!)

매해의 마지막날 경춘선이 지나는 어느 역사에서 이행하기로 한 약속이 있었다. 뾰족이 거기 그 장소라는 약속의 공간은 특별히 지정하지 아니 하였고 시간의 단위 또한 매우 유연하여, 오후 한시부터 굳이 몇 시까지라는 제한은 두지는 않았으되, 적어도 뽑아커피 석잔을 마실 수 있는 시간동안 만큼만 서로를 기다려줄 것, 그리하여 서로 만날 수 있으면 그만 이거니와 비록 상대방을 발견하지 못하였다 하여도 맹새코 절망하지 말 것, 언제까지 그곳 거기에서 상대를 기다리건 혹은 아니건 그것은 서로의 자유 의지이며, 비록 약속 이행을 위하여 춘천행 열차를 타고 있을망정 그 순간 마음이 허락하지 않는다면 기차에서 내리지 말 것...

껍질을 깨야만 알맹이를 볼 수 있는 약속은 판도라의 무엇과 같은 존재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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